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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사이다 - 짜증나고 답답할땐 마시자! 칠성사이다!

국내 탄산음료의 대명사 

 

 

 

 올해로 탄생 65돌을 맞는 칠성사이다는 1950년 첫 선을 보인 이후 180억 병 이상이 팔린 국내 탄산음료의 대명사다. 하루에도 수많은 신제품이 쏟아지고 있는 국내 음료 시장에서 그 어떤 브랜드도 넘볼 수 없는 입지를 다진 장수 브랜드이다.
칠성사이다는 맛에서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노하우와 제조공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제조공정으로 만들어낸 칠성사이다는 국내 소비자들이 65년에 걸쳐 180억 병 이상을 마시면서, 그 맛에 너무 익숙해졌다는 점도 칠성사이다의 큰 강점이다. 소비자들은 칠성사이다의 맛이 곧 사이다 맛이고, 칠성사이다와 다른 맛은 이상하다고 인식하는 덕분에 경쟁 제품 침투가 매우 어렵다고 볼 수있다. 객관적으로 뛰어난 맛과 이를 인정해 주는 소비자 인식이 바로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칠성사이다 맛의 비결이며, 65년 동안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온 원동력이라고 롯데칠성 측은 짚었다.

 


깨끗한 맛을 내세워 소비자를 당긴다 

 

 

 

 

 칠성사이다는 1950년, 롯데칠성의 전신인 ‘동방청량음료(서울 용산 갈월동)’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한 달 전이었다. 값은 한 병에 20원. 동방청량음료는 일본에서 청량음료를 연구했던 경력자와 사이다 판매업자 출신 등 7명이 세운 회사로, 주주로 참여한 7명의 성이 모두 다른 점에 착안, 제품명으로 ‘칠성(七姓)’을 거론했다. 그러나 주주들의 친목과 담합, 회사의 번영을 다짐하는 뜻에서 북두칠성과 관련지어 ‘七星’으로 결정한 것이다. 초기에는 갈월동 공장에서 남대문시장의 도매상까지 손수레나 달구지로 사이다를 옮겼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1920년대 전국의 청량음료 제조업체는 6곳이었고, 1949년에는 ‘서울사이다(서울)’ ‘스타사이다(경인)’ ‘동방사이다(부산)’ ‘삼성사이다(대구)’ 등의 제품이 있었다. 광복 이후는 미군부대에서 코카콜라 등이 흘러나오면서 국내 탄산음료 산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때였다. 당시 사이다는 사카린을 녹인 물에 탄산가스를 주입하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맥주 캔이나 콜라의 빈 깡통을 잘라 병뚜껑을 만드는 수준이었다. 후발주자였던 칠성사이다는 깨끗한 맛을 내세워 수도권을 중심으로 영역을 넓혀갔는데, 1950년대 후반에는 청와대에서 직접 전화로 주문이 와 수표를 주고 거스름돈 없이 박스째 가져갔다고 한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에는 별이 있는 상표 때문에 군사정부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초창기 칠성사이다의 로고는 둥그렇고 빨간 판에 별이 그려져 있는 것이어서, 중앙정보부가 경영진중에 북한 찬동자가 있는지 여부를 조사한 것. 경영진 7명 중 6명이 이북 출신이라는 점이 오해를 더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무렵 칠성사이다는 비약법을 제정하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외래품을 단속하면서 국산 청량음료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칠성사이다는 수도권의 서울사이다, 스타사이다를 누르고 사이다시장의 주도권을 잡았다. 1964년에는 경쟁사였던 서울사이다를 인수했으며, 1969년에는 병당 29원을 받고 탄산음료업계 최초로 3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그러나 1973년 석유파동으로 경기가 위축된 데다 아이스크림과 주스류 소비가 늘면서 탄산음료 소비가 감소, 칠성사이다는 어려움을 겪는다.

 

 

 

 

탄산음료의 강자 자리를 구축하다 

 

 

 

 

 1974년 탄산음료 시장 진출을 시도하던 롯데가 칠성사이다를 인수한다. 사명은 ‘칠성’을 살려 ‘롯데칠성’으로 정했다. 롯데의 인수로 진열을 재정비한 칠성사이다는 탄산음료의 강자 자리를 구축하기 시작 했다. 롯데칠성은 1979년 롯데호텔에 자판기를 처음으로 설치, 유통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수많은 사이다가 칠성사이다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1976년 해태음료는 ‘해태사이다’를, 코카콜라는 ‘킨사이다’를 내놓았지만 사이다 시장을 평정한 것은 칠성사이다였다. 1984년에는 해태음료가 미국의 ‘7-UP'을 도입해 사이다 시장은 로컬브랜드와 글로벌 브랜드의 격전장으로 변했다. 1992년에는 미국, 일본 등지에서 레몬라임음료 시장을 점령한 코카콜라의 제품 ’스프라이트‘가 사이다 시장에 불을 붙였지만 결과는 역시 칠성의 승리였다.

 이에 앞서 1987년 일화에서 ‘천연사이다’를 내놓았으며 1993년 해태음료는 ‘매실맛 사이다’를 출시했다. 해태음료는 1996~1997년 2년에 걸쳐 ‘쿨사이다’와 ‘축배사이다’를 내놓았지만 칠성사이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1년에는 자일리톨을 함유한 동원 F&B의 ‘초록사이다’, 레몬라임 향 대신 매실 향을 가미한 웅진식품의 ‘웅진 초록사이다’가 선을 보였다. 이렇듯 많은 사이다 브랜드가 나왔지만 여전히 칠성사이다의 시장 점유율은 75%에 이른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수많은 사이다 브랜드가 칠성사이다에 도전했지만 사이다 시장만 넓혀주고 물러나 결과적으로 칠성사이다의 영역이 넓어졌다’고 말한다.

 

 

 

 

60여년 동안 맑고 깨끗한 브랜드 이미지

 

 

 

 철저히 차별화된 제품 컨셉트와 마케팅 전략도 장수비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칠성사이다는 '맑고 깨끗한 맛과 이미지로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하는 전략을 펼쳤다‘고 말한다. 칠성사이다의 광고는 환경을 소재로 해 깨끗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1992년 방영된 ‘백두산 천지 광고’는 국내 TV광고 사상 최초로 백두산 현지를 촬영한 것이었다. 소설가 김주영을 기용해 ‘백두산 가는 길’, ‘천지’, ‘장백폭포’ 등 5편을 제작해 1년 동안 시리즈로 방영했던 이 광고는 한국방송광고대상 식음료 부문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느 것이 하늘빛이고 어는 것이 물빛인가. 맑고 깨끗한 이 하늘이 천지”로 시작하는 광고 카피는 칠성사이다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칠성사이다 광고는 백두산 천지 외에도 ‘백두대간’, 연못 등 친환경적인 내용이 이어졌다. 이 같은 이미지 제고전략은 칠성사이다의 맑고 깨끗한 맛을 강조하고 오래된 역사동안 칠성사이다가 ‘낡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하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고 관계자는 말한다.

 

 칠성사이다는 경쟁 환경과 시대 변화에도 적절히 대응을 해왔다. 1970년대 후반 난방 설비가 좋은 아파트가 한창 보급될 때 “겨울에 마시는 칠성사이다 역시 좋습니다”라는 광고로 겨울철 시장 확대 전략을 펼쳤는가 하면, 1990년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자연을 소재로 한 광고를 내보냈다. 2000년에는 젊은 층을 겨냥해 용기 디자인을 바꾸기도 했다. 칠성사이다의 상징인 별을 3D로, 그리고 로고를 비스듬한 형태로 제작해 생동감을 주었다.
최근 칠성사이다의 광고는 변신을 시도하여, 맑고 깨끗한 이미지와 더불어 앞으로 100년을 준비하기 위해 ‘맑고 깨끗한 청춘은 별이다’, ‘맑고 깨끗한 청춘, 별처럼 빛나다’라는 구호들로 현실 속에 위로가 필요한 청춘의 꿈과 열정을 응원한다는 내용의 캠페인을 선보였으며, 이러한 광고 뿐 아니라 롯데칠성은 연간 2억원의 환경기금을 환경보존협회에 지원하는 등의 실제 환경보호 캠페인에도 앞장서고 있다.
“칠성사이다는 한국 탄산음료의 역사 자체이기도 하다. 65년 전 국내 탄산음료 시장에 샛별처럼 등장해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칠성사이다는 우리나라 ‘스타음료’로서의 자리를 이어나갈 것이다.”

 


 

 

[출처] 글로벌 브랜드를 꿈꾸는 한국 최고의 브랜드 - “100억 병 넘게 팔린 음료의 지존 칠성사이다” 김승범
[작성] 한국브랜드경영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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