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MA브랜드를 디자인 하다


브랜드 Talk Talk

에이스침대 -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남들이 안 하는 것을 남보다 먼저 한다

에이스침대가 국내 침대 산업의 에이스로서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품질 관리였다.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경영철학 아래 꾸준한 기술 개발과 적극적인 설비 투자를 계속해 온 결과다. 에이스가 자랑하는 품질 관리는 침대의 과학화철저한 품질 관리를 통해 구현됐다.

에이스침대의 품질 관리가 빛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안 하는 것을 찾아 남보다 먼저, 남보다 잘 만들어내 맨처음이 낫다선도자의 법칙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회사를 세운 안유수 회장은 남의 뒤를 따라서 하면 2등밖에 할 수 없다고 말해왔다. 지금이야 침대 보급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에이스침대가 설립된 1963년만 해도 침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안유수 회장은 10, 20년 후를 내다보고 모험을 감행했다.

1963 9, 33세의 안유수 회장은 서울 금호동에 에이스침대공업사를 차린다. 안유수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우리 주거 문화가 바뀌면 언젠가 침대 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안유수 회장은 스프링을 손으로 만들고 오일버너로 직접 열 처리를 하면서 침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는 끼니도 잇기 어려운 시절이었고 가옥 구조도 한옥 기와집이나 판잣집이 많아 침대 수요는 미미했다. 그나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미제를 찾아 에이스침대가 하루에 10개 이상 팔리면 자장면 파티, 20개 이상 팔리면 회식을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회사가 문을 연 후 10여 년 동안 세 번이나 공장 문을 닫기도 했다. 에이스침대의 시작은 이처럼 초라했다.

하지만 1970년대 초 서울 반포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침대가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아파트가 확산되고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에이스침대도 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안유수 회장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는 남보다 먼저 한다는 것은 기회를 선점한다는 뜻이고 내가 할 수 있는데 남이 먼저 했다면 기회를 상실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업계 최초로 침대공학연구소 설립

에이스의 R&D 전통은 안유수 회장이 세운 것이다. 그는 선진국의 침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 등 외국에 나가 살다시피 했다. 외국에 출장을 가서는 침대를 관찰하기 위해 늘 최고급 호텔에 묵었다. 그가 호텔의 침대를 뜯어보며 연구를 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디자인이 특이하고 색깔이 예쁘면 사진을 찍거나 그림으로 그려서라도 귀국했다고 한다.

2003 1월에 취임한 안성호 사장은 안유수 회장의 장남으로, 대학 시절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매트리스 제작 기술을 습득하는 등 수준급 엔지니어로서의 기초를 다졌다. 침대 속까지 향균 처리하는 기술과 스프링을 이중 열 처리하는 기술도 안성호 사장이 개발한 것이다. 한국 시몬스침대의 안정호 대표는 안유수 회장의 차남이자 안성호 사장의 동생이다. 시몬스침대는 안유수 회장이 국내 생산·판매권을 따내 설립한 회사로, 안정호 대표에게 물려줬다. 시몬스침대는 안유수 회장이 에이스침대를 설립한 초기에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그 미국제 중고 침대였다.

에이스침대는 기술 개발의 산실답게 최초기록이 많다. 품질관리 1등급, 우수 KS 업체 대상, 일본 공업규격(JIS) 인증, 품질관리대상, 금탑산업훈장 등 최초기록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1989년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스프링 자체 개발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매트리스 하나로 받은 특허만 수십 개에 이른다.

 

 

 

  

[출처] 글로벌 브랜드를 꿈꾸는 한국 최고의 브랜드 - “젊은 한국을 키워드로 재기를 꿈꾼다” 김승범

[작성] 한국브랜드경영협회

 

메인

Talk History

1